글 수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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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시민불복종」운동의 창시자이며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사람으로서 20세기 환경운동의 토대가 된 행동하는
지성이었던 Henry David Thoreau(1817-1862)의 수필 “Civil Disobedience”(1849) 출판 150주년을
기념하여 Thoreau Society가 기획 시리즈로 출간한 책 중 하나이며 쏘로우의 교육에 관한 생각들을
그가 쓴 책과 일기들에서 발췌하여 놓은 최초의 교육사상 모음집으로 우리 교육계 및 교육행정가들에게 꼭 읽혀져야 할 내용들이 담겨 있는 관계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난해한 원문들을 번역하였다.
그가 쓴 책과 일기들에서 발췌하여 놓은 최초의 교육사상 모음집으로 우리 교육계 및 교육행정가들에게 꼭 읽혀져야 할 내용들이 담겨 있는 관계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난해한 원문들을 번역하였다.
머리말
많은 우리의 가장 위대한 작가들과 가장 흥미 있는 사상가들의 운명은 후년에 그들의 영광을 칭송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대신에 동시대의 유행
사조(思漸)나 학파(學派)의 신조(信條)를 설명해줄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을 포장하려고 시도하는 자들에 의해 선택적으로 얽히고 약탈적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교육에 관한 쏘로우의 견해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것은 특히 위험한 유혹이다. 아동과 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과 교사로서의 실제
경험은 눈에 띄게 구식이고 전통적인 것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놀라우리 만치 대담하고 독창적이며 때로는 통쾌하게 전통 파괴적인 실제
행위들과 관점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많은 세월에 걸쳐 거의 모든 그의 사상과 생각들이 자기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념들을 강화시키고 또
종종 미화시키려는 다양한 계층의 교육자 이해집단에 의해 전용(轉用)되어왔다. 예를 들어, 교육의 본질적 요소로서 몸으로 체득한 경험에 대한
쏘로우의 강조는-형식적 교수학습 방법들에서 도출되는 혜택들보다는 자주 더욱 결실 있는 것인데-전척으로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하는 구조화되지 않은
교수방법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두고두고 이용되어왔다. 여기에선 훈육과 엄격함은 회피되고, “책으로 공부하는 것”은 조롱되며 교사들은 책읽기
숙제를 내고, 끝까지 읽으라고 하거나, 그 책을 읽고 아동들이 실제로 뭔가를 배웠다는 증거를 요구하기 주저할 정도로 교육자의 역할은 대폭
축소되었다. 그러므로 쏘로우가 자유를 위해 헌신하고 아동과 성인을 위한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경험에 몰두한 것처럼, 그의 교육적 견해들은 현대의
방임주의 교육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비웃기조차 한 엄격한 교수학습방법들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월든』을 자기의 예술적 감각이 만족하는 형태가 될 때까지 일곱 번이나 고쳐 쓴 바 있는 쏘로우는 몸소 자기가 하는 거의 모든 일에
있어서 꾸준한 연습과 목적이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일했다는 사실 또한 잊혀지기 쉽다. 그가 기꺼이 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노력했으며,
학생들에게서도 똑같은 근면을 요구했다는 점은 오늘날 간혹 그의 추종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도 항상 인정되지는 않고 있다. 아동은
“행함으로써” 배운다는 생각은 종종, 아동이 책을 읽음으로서 혹은 쏘로우가 행한 바와 똑같은 힘든 방식으로 듣거나 글을 쓰고 다시 고쳐 쓰는
것에 의해서는 ‘결코’ 배우지 않는다는 불행한 생각과 너무 자주 혼동되고 있다. 쏘로우는, 널리 인정되고 있듯이, 많은 호감이 가는 강경한
경멸적 말투로 교육의 형식적 툴들을 때때로 언급하곤 했다. 그러나 그가 아동들과 행한 일에서는 그는 상식을 사용했고 훌륭한 교사들이 현재도
교실에서 지탱하려 노력하는 똑같은 정확한 기준에 그들을 맞추려고 했다. 월터 하딩은, 예를 들어, 쏘로우와 그의 형이 콩코드에서 학교를 운영했을
때 학생들은 그들이 무엇을 배우고 싶어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한 학생이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대답했을 때, “
우리의 규칙에 복종하고 ” 그리고 “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할” 경우에만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그 학생은 듣곤 했다. 학생들에 따르면, 그
학교의 교과과정은 엄밀하게 짜여 있었다. “ 오전에는,” 한 소년이 자기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입체 도형기하를 암송하고.... 그다음은
지리시간... 그 다음은 문법시간이요.” 오후에는 “헨리 선생님 수업시간인데” 대수학과 라틴어를 배운다고 그는 말했다. 라틴어 시간에 학생들은,
그 학생의 말에 의하며, 알키비아데스의 삶, 불규칙 동사, 그리고 “문법의 동사변화표”를 공부하고 있었다. 라틴 문법공부의 조그만 실수들도 헨리
선생님의 심한 질책을 받았다고 한 학생은 나중에 회고했다.
요즘엔 “현장공부”로 알려진 콩코드 주변의 시골들녘으로 나가는 것이 또한 교과과정의 일부였다. 아동들은 일차적으로 식물들과 동물들을 배우는데 교재 사용을 전혀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쏘로우는 자기가 가르치는 교육의 이런 측면을 기뻐했다. 그리고 그가 쓴 가장 생동감 있는 책들의 일부는 학생들과 교실 밖에서 보낸 이런 시간들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전통적인 면에서 지독한 감독이었고 그의 제자 중 하나가 나중에 지적하듯이, “훌륭한 작업을 요구하는 엄격한” 경향이 있었다. 그가 강행한 전체적인 교육과정은 광상(狂想)적이거나 구조가 없는 것이 전혀 아니고 오늘날 가장 최고라고 대접받는 공립학교들의 교실에서 볼 수 있는 교과과정과 너무도 닮았었다. 몇몇 그런 학교들-예를 들어 역사가 오래된 ‘보스턴 라틴 스쿨’-과 그는 지나칠 정도로 친숙함을 발견하곤 했다.
오늘날 쏘로우는 공립학교들을 가장 신랄히 비판하는 자들에 의해 역설적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념적으로 보수적이며 그들은 -올바르게-쏘로우가 교육에 있어서의 정부의 역할을 비판한 것을 자기들이 하는 비판과 상통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모든 독립적인 정신과 더불어 집단적 책무에 대한 그의 신나는 반항에도 불구하고, 사회집단은 모든 아동들에게 교육을 제공해야 되며 집단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도덕적으로 당당한 견해를 옹호함으로써 그가 공교육을 의도했음을 또한 매우 분명히 했다. 그의 출판된 저작과 일기에 내재한 모든 풍요하고도 사랑스런 비일관성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에 대한 그의 믿음은 열렬한 불굴의 웅변으로 나타난다.
결국, 쏘로우가 교육가들에게 주는 가장 영속적인 유산은, 초․중등학교 수준에서이건 또는 대학교 수준에서이건, 교수학습의 특정한 실제행위에 관한 고립된 문구나 구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그가 우리에게 남겨주고 간 기쁨과 용기의 변함없는 선물은 그 사람의 정신이요, 신선함과 유쾌함이요, 씁쓸한 자기모순에서 그가 취하는 순수한 기쁨이요, 도전적 기질과 그리고 축소할 수 없는 종국적인 그의 삶의 도덕성이다.
이러한 영원히 힘을 주는 선물에 우리가 입힐 수 있는 가장 큰 피해는 어떤 종파적 견해라는 메마른 용기에 그것을 감금시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그의 말들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그의 언어들은 완강히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나는 경계‘없는’ 어딘가에서 말하고자 한다”고 그는 『월든』의 마지막 말들 어딘가에서 주장했다.
그와 같은 시대의 겨우 몇 사람만이 성공했고 그 이루론 그렇게 하기를 힘쓴 사람들이 거의 없는 이러한 일을 그는 애써 해내었다. 수십 년의 먼지를 이기고 그를 다시 살아남게 한 것은 바로 그의 이러한 경계 없음이다. 우리가 그를 경계없이 돌아다니도록 자유롭게 내버려둔다며, 그는 다가올 수세기 동안에도 계속해서 그의 동료 시민들과 동료 인간들을 기쁘게 할 것이고, 격분하게 할 것이며, 알려줄 것이고, 교육시킬 것이라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원래의 모습대로- 일찍이 그가 말한 대로, 기대를 간직한 “청동의 얼굴”로-서 있게 놔두는 일이야 말로 그의 끈질긴 독립정신을 드높이고,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최선의 교훈을 전혀 불명예스럽게 하지 않을 방식으로 우리들 스스로가 그의 학생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요즘엔 “현장공부”로 알려진 콩코드 주변의 시골들녘으로 나가는 것이 또한 교과과정의 일부였다. 아동들은 일차적으로 식물들과 동물들을 배우는데 교재 사용을 전혀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쏘로우는 자기가 가르치는 교육의 이런 측면을 기뻐했다. 그리고 그가 쓴 가장 생동감 있는 책들의 일부는 학생들과 교실 밖에서 보낸 이런 시간들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전통적인 면에서 지독한 감독이었고 그의 제자 중 하나가 나중에 지적하듯이, “훌륭한 작업을 요구하는 엄격한” 경향이 있었다. 그가 강행한 전체적인 교육과정은 광상(狂想)적이거나 구조가 없는 것이 전혀 아니고 오늘날 가장 최고라고 대접받는 공립학교들의 교실에서 볼 수 있는 교과과정과 너무도 닮았었다. 몇몇 그런 학교들-예를 들어 역사가 오래된 ‘보스턴 라틴 스쿨’-과 그는 지나칠 정도로 친숙함을 발견하곤 했다.
오늘날 쏘로우는 공립학교들을 가장 신랄히 비판하는 자들에 의해 역설적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념적으로 보수적이며 그들은 -올바르게-쏘로우가 교육에 있어서의 정부의 역할을 비판한 것을 자기들이 하는 비판과 상통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모든 독립적인 정신과 더불어 집단적 책무에 대한 그의 신나는 반항에도 불구하고, 사회집단은 모든 아동들에게 교육을 제공해야 되며 집단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도덕적으로 당당한 견해를 옹호함으로써 그가 공교육을 의도했음을 또한 매우 분명히 했다. 그의 출판된 저작과 일기에 내재한 모든 풍요하고도 사랑스런 비일관성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에 대한 그의 믿음은 열렬한 불굴의 웅변으로 나타난다.
결국, 쏘로우가 교육가들에게 주는 가장 영속적인 유산은, 초․중등학교 수준에서이건 또는 대학교 수준에서이건, 교수학습의 특정한 실제행위에 관한 고립된 문구나 구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그가 우리에게 남겨주고 간 기쁨과 용기의 변함없는 선물은 그 사람의 정신이요, 신선함과 유쾌함이요, 씁쓸한 자기모순에서 그가 취하는 순수한 기쁨이요, 도전적 기질과 그리고 축소할 수 없는 종국적인 그의 삶의 도덕성이다.
이러한 영원히 힘을 주는 선물에 우리가 입힐 수 있는 가장 큰 피해는 어떤 종파적 견해라는 메마른 용기에 그것을 감금시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그의 말들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그의 언어들은 완강히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나는 경계‘없는’ 어딘가에서 말하고자 한다”고 그는 『월든』의 마지막 말들 어딘가에서 주장했다.
그와 같은 시대의 겨우 몇 사람만이 성공했고 그 이루론 그렇게 하기를 힘쓴 사람들이 거의 없는 이러한 일을 그는 애써 해내었다. 수십 년의 먼지를 이기고 그를 다시 살아남게 한 것은 바로 그의 이러한 경계 없음이다. 우리가 그를 경계없이 돌아다니도록 자유롭게 내버려둔다며, 그는 다가올 수세기 동안에도 계속해서 그의 동료 시민들과 동료 인간들을 기쁘게 할 것이고, 격분하게 할 것이며, 알려줄 것이고, 교육시킬 것이라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원래의 모습대로- 일찍이 그가 말한 대로, 기대를 간직한 “청동의 얼굴”로-서 있게 놔두는 일이야 말로 그의 끈질긴 독립정신을 드높이고,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최선의 교훈을 전혀 불명예스럽게 하지 않을 방식으로 우리들 스스로가 그의 학생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