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크로포트킨의 주요 논문 중 5편을 번역한 것이다. 아나키즘의 철학, 국가관, 정의와 도덕 그리고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의 관계를 다룬 이들 논문에서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즘의 기본 개념과 이론 그리고 입장을 소개하고 있다.
이 논문들이 발표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격렬한 사회변혁이 진행되고 이념적 갈등과 사상적 모색이 치열한 혁명의 시대였다. 사회적 상황의 긴장감은 크로포트킨의 논문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이 책에 소개된 다섯 편의 글은 연설문으로 기획되었거나 발표되었다. 혁명의 시대에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연설은 정치선전과 사상투쟁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였다. 이렇듯 이들 논문들은 치열한 혁명의 현장 속에서 기획되었고, 동시대를 지배하던 주류사상들과의 직접적인 갈등과 충돌을 통해 성숙되었다. 대결의 시대를 반영하듯, 그의 논문에는 과학적 논증과 논리적 전개뿐만 아니라, 격한 감정의 토로와 분노 그리고 자기 방어와 도전의 정서가 넘친다. 때로 이러한 것들은 논문의 순수 이론적 성격을 약화시킬 수도 있지만, 반면에 하나의 이론과 사상이 동시대와의 치열한 대화, 소통 그리고 대결 속에서 배태되고 탄생되고 성숙하는 궤적을 보여준다.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작성된 것들이다. 번역하면서 백 년 전의 논문들에 대한 현대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크로포트킨의 사상이 ‘과거의 사실’을 넘어 오늘에도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의 ‘삶의 자리’를 조망하고 현재적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21세기의 관점이 필요하며, 그것은 학문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세기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과 21세기를 연결하는 학문적 작업’은 러시아 문학 전공자인 역자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고민하던 중 역자는 용기를 내어 옆 연구실의 안상헌 교수께 원고를 부탁드렸고, 그것은 이 책에 수록된「아나키즘 르네상스」로 나타났다. 20세기 아나키즘의 다양한 흐름을 고찰하고, 21세기의 아나키즘 르네상스를 조명한 논문에서 안상헌 교수는 현대 아나키즘(운동)의 갈래와 성격 그리고 문제와 전망을 정확하면서도 간결하게 서술해 내었다. 역자는 크로포트킨에 대한 ‘현대적 보완’으로 부탁했지만, 안상헌 교수의 논문은 보완을 넘어, 문제를 제기하고 전망을 제시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안상헌 교수에게 신세진 것은 「아나키즘 르네상스」뿐만이 아니다. 충북대학교 인문대학에서 안상헌 교수와 이웃한 연구실에 있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1년 365일 가장 일찍 출근하여 가장 늦게 퇴근하는 그의 학문적 열정에 감동을 받았고, 자잘하고 초보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진지하고 풍부하게 답하는 그의 박학다식과 학문적 자상함에 고마움을 느꼈다. 크로포트킨 번역에 대한 영감을 준 것도 그였다. 4년 전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역자는 안상헌 교수의 연구실에서 담소를 나누었고, 대화의 주제는 곧 사회철학의 문제로 옮겨갔다. 강의가 되어 버린 이날 담소에서 역자는 아나키즘이 한국의 근대사와 사상사에서 중요하지만 여전히 큰 공백으로 남아있으며, 크로포트킨 번역이 이 공백을 메우는 일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날 저녁의 영감은 그 후 번역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안상헌 교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또한 번역 과정에서 충북대학교 인문대학의 교수들로부터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철학과의 김귀룡 교수는 철학의 기본 개념과 논쟁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학과의 윤진 교수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사건과 인물에 대해 말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난삽한 번역원고를 꼼꼼하게 읽고 교정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불문과의 고봉만 교수는 프랑스어 번역과 올바른 표기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번역과 출판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자문을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은 2006학년도 충북대학교 학술연구지원사업계획의 지원을 받았다. 충북대학교에도 감사드린다.
역자가 받은 도움이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공부는 홀로 하지만 학문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동안 도와주신 가족, 선후배, 친구들 그리고 학문적 동지로 함께해주신 충북대학교 인문대학의 동료 교수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