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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通鑑節要)』는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이
편찬한 『자치통감(資治通鑑)』 2백94권의 내용을 발췌, 50
권으로 축약 편찬한 책이다.
『자치통감』은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 13년(B.C.
403)부터 후주(後周) 현덕(顯德) 5년(A.D. 959)까지 1천3백
62년간의 사적(史蹟)을 편년체(編年體)로 엮은 통사(通史)로
서, 후대 편년체 역사 서술의 모범이 되는 역사서이다. 그
러나 그 분량이 2백94권으로 너무 방대해, 일반인은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통감절요』를 편찬한 강지(江贄)는 송(宋)대의 처사(處
士)이다. 그는 『자치통감』 2백94권 중 ‘역사적으로 중요
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을 발췌해, 「주기(周紀)」 5권을 2
권으로, 「진기(秦紀)」 3권을 1권으로, 「한기(漢紀)」 60
권과 「위기(魏紀)」 10권을 「한기(漢紀)」 22권으로, 「진
기(晋紀)」 40권을 5권으로, 「송기(宋紀)」 16권과 「제기
(齊紀)」 10권을 1권으로, 「양기(梁紀)」 22권을 1권으로,
「진기(陳紀)」 10권을 1권으로, 「수기(隋紀)」 8권을 1권으로,
「당기(唐紀)」 81권을 14권으로, 「후량기(後粱紀)」
8권과 「후한기(後漢紀)」4권을 1권으로, 「후주기(後周
紀)」 5권을 1권으로 대요 만을 추려서 간추려 『통감절
요』 50권을 만들었다.
그는 나름의 역사인식을 가지고 내용을 취사선택했다. 사
서를 요약하거나 발췌하는 일은 역사인식이 없다면 불가능
한 작업이다. 그러면서도 『자치통감』의 문장을 그대로 찾
아낼 수 있을 정도로 문맥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문을 그대로 살렸다.
강지는 휘종(徽宗) 정화(政和) 연간에 천거되었으나 관직
에 나가지는 않았다. 그 해 소미성(少微星=처사성處士星)이
출현했다고 해 소미선생(少微先生)이란 사호(賜號)를 내렸
는데, 이 때문에 『통감절요』를 『소미통감(少微通鑑)』이
라고도 한다. 그 후 후손 강묵(江黙)이 주자(朱子)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이 『통감절요』의 가치를 질문하고 규명하자,
주자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강연(江淵)이 송(宋) 이종(理宗) 가희(嘉熙) 원년(1,237)에
이를 출간했고, 출간에 앞서 많은 윤색을 했고, 음주(音注)
를 달았다. 연표[표表]와 연혁(沿革 [지志]) 및 순서대로 짓
는 찬(讚 [서찬序贊])도 추가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통감절요』는 정통과 비정통의 구분
을 중시한 『주자강목(朱子綱目)』의 영향을 받았다. 주(周)
난왕(赧王)의 입진(入秦) 이후가 「진기(秦紀)」로 되어 있
던 것을 「동주군(東周君)」으로 바꾸고, 삼국시대의 촉한
(蜀漢)을 정통으로 기술, 조위(曹魏)를 윤위(閏位),
즉 비정통으로 보는 등 정통사관을 드러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