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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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도 부모님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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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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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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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도원에게
네가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 있을 때 이 편지지가 담긴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발신처를 보고서 교재 구입에 대한 안내겠지 생각하며 펼쳤는데 우와, 선물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기뻐서, 좋은 학교야. 참신한 아이디어야, 맘에 들어. 하면서 읽었는데 차츰 난감해 지더구나. 책을 추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책’ 이라는 단어 앞에서 들뜬 기분이 가라앉았다.
삽시간에 책과 관련된 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네가 제일 좋아했던 책은 다섯 살 때 바둑학원에서 성탄 선물로 받은 ‘나의 해님 달님 이야기’ 라는 책이었지. 오누이 중에 동생이 바로 너였거든. 너에게 처음 읽어준 책도 생각났다. 나중엔 네가 먼저 외워서 들려주었었지.
그런데 네가 커갈수록 엄마는 너를 앞질러 책 욕심을 냈구나. 너의 성장, 너의 호흡, 너의 발걸음에 맞추지 않고 내 욕망, 내 불안, 내 결 핌에 맞추어 책을 사들이고 책을 권했고, 심지어 책 읽기에 돈까지 걸었더구나.
네가 여기까지 올 동안 엄마가 ‘너를 위한다.’ 는 이유로, 너에게 들이 민 책들을 떠올려 보니 내 숨이 다 막힌다.
수능이 끝난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너에게 다가가 엄마는 또 너에게 책을 내밀었지? 으하하하. 이렇게 돌이켜 보니 내 사랑법이 참 너를 괴롭게 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래서 난 너에게 책을 더 이상 권하고 싶지 않다. 게임하는 너, 친구들이랑 킬킬대고 놀고 노래방 가는 너, 늦잠 자는 너, 내가 알 수 없는 뭔가를 궁리하고 꿈꾸는 너, 너의 그런 모습이 무조건 다 좋다.
지금은 책을 읽을 때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뛰쳐나가 느낄 때라는 생각도 든다. 책을 내가 읽을 테니 학교에서 선물해주면 날 주어라. 추천도서 중에 읽고 싶은 책이 한 권 있더구나.
노마히데키가 쓴 ‘한글의 탄생’이다.
고맙다. 네가 다닐 학교에도 감사드린다.
2012년 2월 17일